에스더 최의 행복한 쉼터 - 파워 게임

근간에 소중한 친구와 작별을 고했다. 그녀로부터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지 채 석 달도 채우지 못해서다. 나보다 열 살이나 아래인 그녀가 먼저 지구를 떠난 뒤에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러 다녔다. 여전히 이곳을 향해 웃고 있는 카톡 속의 행복한 얼굴이 함께 했던 추억들을 상기시키는 것이 무척 힘들다. 그녀가 남기고 간 많은 분량의 여행칼럼은 대부분 나와 동반했던 여행지였기에 더욱 그런가 보다.

호프 밸리에서의 은사시나무와 송어낚시, 요세미티 하프돔에서의 저녁노을, 나파의 한적한 시골 마을의 포도원과 하프문베이 바다의 장엄한 파도, 그리고 따스한 봄볕 아래서 손잡고 거닐었던 보랏빛 들꽃길이 마냥 그립다.

그녀와의 갑작스런 이별 후 나는 계속 의아했다. 하필이면 왜 내게 이런 일이 허락됐느냐고 울부짖으며 분노할 만도 한데 그녀는 단 한마디의 원망도 없이 젊은 나이에 이 땅을 훌훌 털고 떠났다. 과연 긍정적인 그 원천의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허함과 우울한 마음으로 무작정 영화를 보러 다닌 것이 열 편이 넘었다. 그중에 한국 영화는 네 편을 감상했고 어제는 늦은 시간에 '택시운전사'를 관람하게 되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를 실화한 영화라는 점에서 초반부터 매우 긴장되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스크린에 과격하게 퍼부어지고 있는 군부대들의 민간인 사격장면에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그 어떤 명령 수행이 떨어지더라도 어찌 한 가족 한 형제에게 그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너무 끔찍하여 울분을 금할 수 없었다. 사건 당시 나는 서울에 살고 있었기에 이 비극적인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미디어를 장악한 정부의 소행으로 올바른 뉴스를 접할 수 없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해도 역사의 진보를 위해 희생하신 임들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에 내내 명복을 빌었다.

극장 안 곳곳에서도 관람객들의 분노와 통탄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갑자기 상영 도중 2004년에 개봉한 영화 '실미도'가 떠올랐다. 1970년대 북한 침투 작전 특수 훈련 중 정부와 군, 경찰 간의 교전으로 비운에 갔던 31명의 영혼들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평안을 빌었다. 사건 이후 국방부의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해 늦게나마 조사가 시작됐던 것으로 기억되는 '실미도'가 지금의 '택시 운전사'와 오버랩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생각하다가 문득 힘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내가 믿기로 인생은 사는 날 동안 연속적인 파워게임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워게임의 승패는 마음가짐의 싸움으로부터 시작되고 정의와 불의, 선함과 악함의 대결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하늘과 땅으로 나뉘는 것처럼 중대한 일인 것이다. 나는영화 '택시 운전사' 를 통해 처음에는 작은 힘으로 시작된 공의가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적인 파워가 되어 결국 죄와 악과 불의를 몰아내고 있음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았다. 겉으로는 불법의 사악한 권력이 세상을 삼킬 듯 거대한 힘으로 보이지만 언젠가는 내공의 힘을 가진 의로움이 반드시 승리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영화에서처럼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감춘다고 감춰진 일이 어디 있었던가! 어차피 살아가는 일 자체가 파워 게임이라면 나는 오직 선한 싸움을 위해 내공을 다지리라 마음먹는다.

하늘로 떠난 내 친구는 심령으로 자기를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세상을 이겨낸 영력을 가진 실력자였다. 평소 그녀가 즐겨 부르던 노랫말은 내면에 잠재해 있던 거대한 파워였음을 나는 지금에서야 알았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근심 하나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을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