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과 나이듦에 대한 여덟 가지 시선

나이를 먹으면, 그것도 일흔이 넘으면, 나는 내가 신선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온갖 욕심도 없어지고, 이런저런 가슴앓이도 사라지고, 남모르게 품곤 했던 미움도 다 가실 줄 알았습니다. 나이 일흔은 '드문나이'라고 해서 고희(古稀)라고 했는데, 성숙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흔이 되고 보니 욕심도 가시지 않고 가슴앓이도 삭지 않고, 미움도 여전하고 고집은 신념이란 이름으로 더 질겨지고, 과거의 보람은 고함처럼 커가기만 합니다.

어떤 은퇴한 부부가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들 부부를 불러 저녁식사를 하면서 "잘 다녀 오마."하고 인사를 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아들 부부를 배웅 나간 부모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힌 뒤 빨리 내려가지 않아서 아들 부부의 대화를 듣게 된다. 아들이 "노인네들이 벌어놓은 것 다 쓰고 세상 뜰 모양이지."라고 며느리에게 말한 것을 듣게 된 것이다. 상심한 늙은 부부가 주변에 하소연했더니, 다른 집 자식들도 마찬가지라고 하더란다. 늙음과 젊음은 이렇게 서로의 형편과 처지가 다르다.

회원수가 3,200여명에 이르는 Daum 온라인 카페'어르신사랑연구모임 (이하 '어사연')의 회원들이 매월 1회씩 오프라인 공부방에서 만나 그동안 노인과 관련된 100가지 주제로 100회 모임을 갖게 된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이 책은 필진13명중 정진홍 교수를 제외한 6명이 전, 현직 사회복지사로 구성되어 있다.
어사연의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노년과 나이듦에 대한 여덟 가지 시선』은 10대 중학생부터 80대 노인까지 각 세대별 어사연 회원들이 골고루 참여하여 각자의 세대에서 바라보는 노년의 삶의 모습을 그려낸 책이다.

서문, 노년을 말하다. 30대를 맞을 때 얼마나 많은 생각과 다짐을 했으며, 40이 될 때는 또 얼마나 '불혹'의 유혹에 흔들렸는지요. 이렇게 50, 60을 지나 70에 이르면 '신선'이 될 것도 같은데…(정진홍)

십대, 나는 지금 열일곱 살! 할머니, 할아버지의 지혜를 빌리고자 몇 사람이나 그들의 발걸음에 속도를 맞출 수 있을까? (배윤슬)
이십대, 노년을 꿈꾸다. 나도 누군가를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노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향경)
삼십대, 나이 들면 어디에서 살고 싶으세요? 가정과 직장에서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며 나의 노년에 대한 계획은 잠시 보류해둘 수밖에 없었다 (정은숙)

사십대, 불혹의 나이에 내가 그리고 싶은 노년 그림은……노인요양원에 근무하면서 정작 자신은 나이 들어 어디에서 살지를 생각해보지 못한다 (장효석)
오십대, 정말 좋은 나이입니다! 50원짜리 동전처럼 자신의 쓸모가 정말 이제는 다 된 걸까라며 끼인 세대임을 한탄했다 (강의모)
육십대, 나는 지금도 호기심 많은 소년이고 싶다 자신만의 개성있는 궤적을 그려오며 남은 인생 후반부를 준비한다. (김용수)
칠십대, 내 인생의 최대공약수. 나이가 들면 점점 욕심이 가시고 미움도 사라져 신선이 되는 줄 알았다. (정명자)
팔십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철이 든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정리를 하며 나이 든다는 것은 철이 든다는 것이다 (유재완)

평소 공자의 말씀에 귀기울여왔던 동양인들은 최소한 40세가 되면 불혹, 50세 지천명, 60세 이순의 순으로 유혹을 떨쳐내고, 하늘의 뜻을 이해하며, 어떤 소리에도 희로애락하지 않는다고 알아왔는데 70세가 넘어서도 여전히 이러한 용어가 실감나지 않는다.

집에 9천여권에 이르는 책과 4천장이 넘는 CD를 소장하여 유명한 60 대 대표 김용수 씨는 이렇게 말한다. "말하기 편하게 나이를 나눠 일흔이다, 예순이다, 쉰이다, 마흔이다, 서른이다, 스물이다, 또는 여든이다, 아흔이다 하지만 삶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끊어지지 않는 긴 연속입니다. 나이는 그렇다고 하는 것을 마디마디 거듭 확인하기 위해 마련된 징검다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바람처럼 물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흔을 살고 싶다는 고백입니다. 젊음 속에서 노년의 깊이를 찾고, 노년에도 젊음의 격동을 겪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듣습니다.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부는데 무슨 굴곡을 탓하고 장벽을 나무라겠습니까. 머물러야 할 때는 머물고, 놓아야 할 때는 놓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젊어서든 나이 들어서든 뭐가 그리 다르겠습니까. 벤자민 버튼의 시간처럼 거꾸로 흐르더라도 그 의미는 다름이 없겠지요. 어느 시간이든 나의 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밖에요…. 가을,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뚜렷한 계절입니다."

이 책의 표지를 들추고 한번 읽고 두서없는 생각이 떠올라 또한번 읽고,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 한글자 한글자를 곱씹듯 읽어가며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시기와 치기로 똘똘 뭉쳤던 지난날이 떠올라 힘들 수도 었다. 나이를 먹으면 가다듬어질 줄 알았는데, 어르신의 글을 읽다보면 그것이 아니었음을 알아간다. 그쯤 나이가 들면 사람들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던 것도 까만 옛일이 되고, 내 생각이나 결정만이 옳다고 여겨 고집 부리던 일도 우스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부럽고, 아쉽고, 그래서 시샘도 하고, 다툼도 하고, 체념도 하고, 부끄러운 변명을 하기도 했던 일도 ' 그것참! 하는 한마디 혼잣말로 다 치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후회도, 안타까움도, 두려움도, 죽음을 직면하리라는 예상 앞에서 나도 모르게 처연해지는 절망도 아침 안개처럼 걷힐 줄 알았습니다. - (본문9p에서 발췌)

아들이 둘 있어도 자주 찾아오지도 않고 가끔 전화를 해도 바빠서 제대로 통화도 못하는데, 할머님은 아직도 그 아들들 밥을 해주지 못하고 살림을 못하는 것이 한이 되어 요양원 직원들이 아무 쓸모도 없는 늙은이를 잡아다가 집에 못 가게 해서 아이들이 굶고 있다고 생각하신다. 집에 가신다고 화를 내면 어느 날은 원장님이 허락하셔야 간다고 달래기도 하고 어느 날은 가까운 곳에 산책을 시켜드리기도 한다. 어떨 때는 요양원 승용차에 태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기도 한다. 치매 노인들을 돌볼 때면 노인들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돌보는 방법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비단 치매 노인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면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더 치중해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책속에서

고령화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중한 정보와 지혜가 될 만한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준비되어 있다. 우리의 인생시계는 모두 '노년'이라는 공평한 종착점으로 부지런히 가면서, 살아온 날을 추억하고 살아갈 날을 기대한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다 문득 힘에 부친 사람들에게 이 책이 시원한 가을바람 같은 존재가 되길 희망한다.

어르신사랑연구모임 지음 | 궁리 | 2009년 09월 21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