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사 : 현대 (1960년대)

현대 (1960년대)

1960년대 미국사회는 미국의 독립 이래 미국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Civil War, 두차례 세계대전, 대공황 에 못지않은 혼란과 대변혁의 시기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젊은이들은 도덕적 가치를 재창조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이상주의의 시기이면서 동시에 암살, 폭력시위, 시위진압 경찰과 군의 잔혹행위들을 목격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60년대는 전쟁 후에 팽배했던 나태함과 자아도취, 그리고 헨리 루스 (Henry Luce)의 "미국의 세기 (American century)"가 줬던 미국에 대한 환상에 큰 일격을 가한 시대였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의 정글과 논밭을 헤매며 수렁에 빠져있었고 여성 및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불같이 일어났다.
그러한 분위기는 다른 한편으로는 퇴행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정부, 교회, 사회 등 기성질서와 권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그런 분위기는 문학작품을 통해, 록 음악을 통하여 반 문화(counter culture) 현상으로 사회전반으로 확산되어 갔다.

여성 및 흑인 민권운동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많은 부문에서의 사회변혁운동이 1960년대를 거치면서 시작되었다. 여성의 권리신장 운동이 그 뿌리를 이 시기에 두고 있으며 흑인들도 이때부터 그들의 권리신장을 위해 과격한 행동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런 운동의 최전선에는 언제나 대학생으로 상징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성, 의복, 머리모양, 음악에 대한 기존의 모든 가치들에 대해 그들은 도전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하려는 몸부림 속에서 젊은이들은 마약을 복용하고 청바지를 입고 장발을 하고 비틀즈의 음악을 들었다.

이런 정치, 사회적 분위기는 미국 여성들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시민권 운동과 학생운동들에 참여해 권리주장을 체험한 여성들이 여성의 종속 철폐를 주장하며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1964년의 시민권 규약이 성에 기초한 차별을 금지시킨 것은 여성운동이 이룩한 대표적 성과였다.

60년대 시민권 운동의 또 한 주류는 흑인의 지위와 관련된 것이다. 미국사회의 흑인에 대한 편견과 불신은 여성에 대한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뿌리가 깊었다. 깊은 좌절감 속에서 흑인들은 좀더 과격한 방식으로 그들의 요구와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6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나 30여명이 사망하고 약탈과 방화가 6일동안이나 계속 되었다. 유사한 폭동이 뉴욕과 시카고를 비롯한 전국 여러 도시로 확산되었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 100주년을 기념해 1963년 8월 수도 워싱턴에서는 전국에서 수십만명의 흑인들이 모여 건국 이래 최대규모의 시위를 벌였다. 여기에서 킹 목사는 '흑인에게도 꿈이 있다'는 명연설을 남겼고 흑인들은 '우리 승리하리라' 합창하며 워싱턴 중심가를 행진했다.

새로운 세대의 출현과 진통

"미 국민들이여, 국가가 당신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지말고 당신이 조국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으라"며 1961년 3월 3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의 젊은이들을 동원하여 공산주의의 위협을 받고 있은 나라들에게 교육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가르쳐 주며 미국의 이상과 기술들을 습득케 한다는 야심 찬 평화 봉사단 활동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의욕과 반 공산주의 강박관념으로 미국외교사상 가장 위험한 외교적인 실수들을 거듭하였다.

쿠바 위기

피그만 (The Bay of Pigs)사건은 카스트로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마피아의 하수인들을 이용하여 카스트로를 암살하고 망명자들을 규합하여 큐바에 침공한다는 계획이었다. 케네디의 재가를 받은 CIA는 1961년 4월 망명 큐바인들로 구성된 침략군들을 피그만에 상륙시켰으나 실패하고 만다. 소련의 후루시쵸프(Nikita Khrushchev, 1894-1971)수상은 피그만 사건이 일어나자 쿠바의 군사력 강화를 빌미로 쏘련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쿠바에 군사지원을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하였다. 사건은 미국의 정찰기가 쿠바에 소련의 미사일 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정황을 포착함으로 미, 소간에 전쟁 1보전까지 갔던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미사일 기지를 해체하고 쿠바에서 철수시킬것을 요구하면서 쿠바해역을 완전 봉쇄하고 검색하라고 명령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쿠바에 대한 전반적인 침공을 준비하였다. 무기를 실은 소련의 배들이 쿠바로 항해하는 13일 동안 양국간에는 긴장이 감돌았으며 전 세계가 결과를 주시하고 있었다. 막후 협상을 통해 결국 소련은 미사일을 해체하고 미국은 쿠바 침공을 백지화하여 양 대국의 충돌은 면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