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사랑한 한국인, 이미륵

이렇게 절절이 그리움이 배어 있는 고향을 독일인들 보다도 더 아름다운 독일어 문장으로 묘사한 한국인의 소설이 있다. 1946년 독일에서 발표된 이미륵 (李彌勒, Mirok Li, 1899년 3월 8일 - 1950년 3월 20일)의 한국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Der Yalu fließt)'는, 그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기 전 평화로웠던 어린시절부터 신식 교육을 받고 민족 의식에 눈을 뜨며 독일에 도착하게 되기까지를 담은 자전적 소설이다. 외국인이 독일어로 쓴 낯선 나라의 이야기가 출간되었을 때 초판이 매진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올해의 가장 훌륭한 책" 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평론가들의 서평이 100편 넘게 신문에 실렸고 독일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문학성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죽은 뒤에도 BBC 등 유럽 방송들은 이미륵의 이야기를 방영했다. 독일인들은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만큼 이 책을 아낀다.
<압록강은 흐른다>에는 어릴 적 황해도 고향의 토속적인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녹아 있다. 꿀을 훔쳐 먹은 일, 벽장 깊숙이 숨겨놓은 비상약을 먹고 실신한 일, 이웃 아이들과 달밤에 벌이는 싸움박질…. 선비인 아버지가 선생을 모셔와서 연 서당에서 천자문을 떼고, 신식 학교에 가서 자연법칙과 링컨을 배우는 급변기의 교육을 받은 이미륵. 논어와 맹자를 배우다가 링컨의 전기를 두고 조선 선비인 아버지와 주고받는 대화는 독일인의 눈에도 무척이나 재미있었을 것이다.

"오랜 옛날부터 우리 고국을 이 무한한 만주 벌판과 분리시키고 있는 국경의 강은 쉬지 않고 흐르고 흘렀다. 이쪽은 모든 것이 크고 어둡고 진지했으나, 저쪽은 모든 것이 작고 맑게 보였다."

"그 집 정원에는 꽈리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 빨간 열매가 햇빛에 빛났다. 우리 집 뒷마당에 서 그렇게도 많이 보았고, 또 어렸을 때 즐겨 갖고 놀았던 그 식물을 나는 얼마나 좋아했던가! 마치 고향의 일부분이 내앞에 실제로 와 있는 것 같았다."

이미륵은 황해도 해주 출생의 망명 작가이다. 본명은 이의경(李儀景) 이며 독일식 이름은 Mirok Li(미로크 리). 그는 황해도 해주 대지주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한학을 배웠으며, 풍습에 따라 조혼하여 1남1녀를 두었다.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시절에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이 수배령을 내리자 안중근의 사촌 안봉근의 권유로 상하이를 거쳐 1920년에 독일로 망명하였다. 독일 뮌스터슈바르차하 분도회 수도원에서 8개월간 독일어를 배우고, 뷔르츠부르크대학교 의학부와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의학부에서 공부했으며, 뮌헨대학교 생물학부 동물학과로 전학하여 1928년 뮌헨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뮌헨에서 서예 지도와 번역 일을 하였고, 문예지 'Dame'에 <하늘의 천사>를 독일어로 발표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줄거리

주인공 '미륵'은 사촌형 '수암'과 함께 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우며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뒤 수암은 다른 동네에서 한학을 배우게 되지만, 미륵은 아버지에게서 동양적 교양을 갖추며 자라난다.

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지기 전만 해도 서당을 운영하는 전형적인 한학자였지만, 유럽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어 아들 미륵을 신식학교에 진학시킨다. 미륵은 그 낯선 학문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아버지를 위해 신식 학교에서의 수업을 꾸준히 이수하고 다양한 신문물을 접하며 개화의 필요성을 깨달아 간다.

그 즈음 경술국치가 일어나고, 미륵의 아버지는 사망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일본어로 새로 배워야 하게 되었고, 조선의 독립성은 교과서에서 부정되고 왜곡된다. 미륵은 신식 학문을 그만두고 시골로 들어가 쉬게 되지만, 기차를 타고 유럽으로 가겠다고 가출을 했다가 실패하고 돌아오자 어머니는 미륵에게 학교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고, 마침내 서울의 의학전문학교에 합격한다.

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조선총독부의 탄압을 피해 낙향한 미륵은 어머니의 권유로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향하고, 심양과 난징, 상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기선을 타게 된다. 배는 콜롬보, 지부티, 수에즈 운하를 거쳐 마르세유에 입항한다. 마침내 독일의 뷔르츠부르크에 도착하여 서서히 독일에 적응해 가던 중, 어머니의 부고를 전해 들으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 전후의 모습을 개인적 관점에서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독일에 당시 우리 민족의 생활상을 아주 상세히 소개한 작품이기도 하다. 독일뿐만 아니라 우리로서도 "대원 어머니"와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풍습까지 담고 있고, 윤리관, 문화풍습, 소작제도의 일면까지 두루 담겨 있어 역사적으로도 눈여겨볼 만 하다.

그가 잠든 지 64년이 지났지만, 독일인들은 여전히 그의 묘소를 찾고 그의 책을 읽는다. 1946년, 전후 독일 문학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등장한 한국인 이미륵은 독일어로 한국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고, 독일인이 읽어도 아름다운 문체와 감동적인 이야기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독일 학자들의 눈에도 그의 문장은 탁월했기에, 외국인이 독일어로 쓴 소설이라고 믿기 어려워했다. 그러나 조국은 평생을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그의 혹독한 외로움과 죽음을 오랜 시간 동안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저자 전혜린은 1959년 뮌헨에서 이미륵을 발굴해 그의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한국에 소개했다. 전혜린이 35년 늦게 태어났지만, 두 사람 다 이북이 고향이고 독일 뮌헨대에서 공부했다. 고병익 박사는 처음으로 고국에 이미륵을 알렸고, 전혜린은 처음으로 그의 책을 번역했다. 이후 정규화 박사는 평생을 바쳐 이미륵의 인생을 연구하고 그동안 수집한 이미륵 관련 자료 전체를 1994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했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한 생을 이국에서 불꽃처럼 살다 간 이미륵의 일생을 잔잔하게 흐르는 압록강처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작가 이미륵은 3.1운동 당시 탑골공원에서 반일 전단을 뿌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이를 인정받아 1963년 대통령 표창(후에 건국훈장 애족장으로 변경)이 추서되었다.

압록강은 흐른다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wz_Co6PFcS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