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최의 행복한 쉼터 - 오늘의 포커스

얼마 전 존경하는 지인 부부와 점심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1시간 30여분이 지나서야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도착하신 분들은 트래픽 시간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정체된 도로사정을 설명하기에 애썼고 나는 기다림의 인내를 웃음으로 답하느라 입가가 피곤했다. 비록 때늦은 점심을 먹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참으로 유익한 대화를 나누며 보람있는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와 일상을 정리하고 TV 앞에 앉았다. 늘 그렇듯이 오늘의 지역 로컬뉴스부터 틀었다. 680 프리웨이에서 있었던 교통사고 소식이 눈에 들어온다. 순탄하게 프리웨이를 잘 달리고 있던 자동차 행렬 안으로 갑자기 도로변에 서있던 거대한 나무가 자동차를 덮치면서 쓰러졌다고 한다. 그일로 J병원에 근무하는 오십대 후반의 여의사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고소식이다.

등골이 오싹한다. 그 지역의 같은 시간대 도로에서는 오늘의 만남을 위해 나에게 달려 오고 있던 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후 사고의 경위를 설명하는 리포터는 멀쩡하게 보여진 나무는 실상 가뭄으로 바싹 말라 있다가 견디지 못하고 넘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까지 아득해진 나는 잠시 TV를 끌수 밖에 없었다. 뜻밖에 생명을 잃은 사람은 아마도 스케줄에 따라 출근길이었을 테고 집을 나서면서 가족들과는 저녁에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경쾌하게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 커피한잔을 들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 출발하면서 계획된 하루의 바쁜 일과를 머릿속에 그렸겠지. 어쩌면 그녀는 좀 더 편안한 운전을 위하여 자동차 오디오에 씨디를 넣고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했을지도 모른다. 몇 분 후 끔찍하게도 나무에 맞아서 목숨을 잃을 일은 자기 인생에 있어서 전혀 상상조차 못했을 테니까.

이후에도 나는 종종 생면부지인 그녀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라서 마음이 슬펐다. 오늘도 나는 분주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TV앞에 앉는다. 채널 7 ABC뉴스에 초점을 맞춘다. 브레이크 뉴스가 화면에 뜬다. 나흘 전에 발생한 LAKE COUNTRY에 큰 화재가 아직까지 전혀 진압이 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예 OUT OF CONTROL 이란다. 지난 해에 소노마 카운티에 있었던 대형화재는 또 얼마나 끔찍했던가. 마음이 아파서 다른 채널로 돌린다. 지난 5월 하와이섬 킬라우레아 화산이 폭발하여 여전히 용암이 분출되고 있으며 유독 가스가 난무하고 있다는 뉴스다. 이 현상은 앞으로도 몇 달이 더 지속될 것이라고 전한다. 또 6월 초에 발생했던 과테말라의 푸에고 화산의 폭발로 인한 이재민의 실태도 함께 비추어 준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들의 모습 속에 미래를 알 수 없는 내 모습이 투영되어 다가온다.

정말 싫다. 절대 나는 아닐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몸서리를 친다. 그러나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하는 불의 고리가 아니더라도 지구 곳곳에서는 산이 터지고 땅이 꺼지고 쓰나미가 덮어 버리고 바람과 불이 쓸어 버리는 속수무책의 자연재해가 나날이 빈번해지고 있음을 본다. 이러다가는 일본의 후지산과 한반도의 백두산, 이곳 미국의 엘로스톤이 한꺼번에 터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심히 걱정이 된다.
누구라도 하늘 높이 피신할 수도 없고 땅속 깊이 숨을 수도 없다.

나는 이 시점에서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하는지 심각해진다.

오랜 고심 끝에 그냥 오늘 하루를 잘 살기로 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그렇게 잘 살다 보면 언젠가 닥칠지 모르는 그 날에 후회 같은 것은 덜할듯 싶다. 그래서 오늘도 어렵지만 관용과 배려와 사랑을 내 마음에 철칙으로 삼고 부지런히 감사거리를 찾는다.

단 1분 후의 일을 알 수 없는 인생을 오늘도 살아 숨쉬게 하는 하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니 환경에 상관없이 지금의 내 자리가 에덴동산이 된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