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역사

1911년 8월 22일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 분실 사건

인류 최고의 보물이 가득한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가 분실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모나리자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초상화로 당시에는 다른 르네상스 걸작들에 가려져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1911년 8월22일 화요일 화가 루이베루드는 루브르 박물관의 카레관에서 모나리자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전날은 휴관일 이었기에 모나리자가 분실된 지 하루가 지난 후에야 발견된 것이었다. 도난 사실을 알게 된 프랑스 파리 경찰은 루브르 박물관을 즉시 폐관하고 프랑스 국경을 봉쇄했으며 철저한 조사를 시작했지만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한 채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건이 잊혀질 만큼 시간이 흐른 2년 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고향 피렌체의 어느 갤러리 주인에게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는데 '나폴레옹이 약탈했던 모나리자가 고향인 이탈리아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충분한 보상을 해주면 모나리자를 줄 수 있다.' 라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보낸 범인은 벤센조 페루지아로 과거 모나리자의 보호용 유리케이스를 만드는 업무를 했기 때문에 루브르박 물관의 내부 구조와 보안체계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페루지아는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옷을 입으면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허점을 이용해 자유롭게 박물관에서 움직이며 작품을 훔칠 수 있었 던 것으로 밝혀졌다. 범인인 페루지아가 받은 형량은 7개월하고 9일 이었으며 석방 이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1930년 8월4일 세계 첫 슈퍼마켓 '킹 컬렌(King Kullen)' 오픈

1930년 8월4일 뉴욕시 변두리 퀸즈의 자메리커 거리에 '킹 컬렌 (King Kullen)' 이라는 슈퍼마켓이 등장했다. 미국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슈퍼마켓이었다. 당시 는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공장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늘어나 어려운 시기이며 분위기도 침체되어 있었다. 이때 등장한 대형 슈퍼마켓은 대 혁신이란 말이 아깝지 않은 큰 변화였다. 슈퍼마켓은 뉴욕의 번잡한 쇼핑가에서 몇 블럭 떨어진 한적한 곳에 헌 차고였던 낡은 건물에 세워졌는데 약 150평 규모의 매장에는 통조림과 빵, 과일 등의 식품이 가득 채워졌다. 창업자인 마이클 컬렌은 상점에서 일하며 오랜 경험을 쌓아왔고 그의 값싸고 빠르게 대량구매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대형 슈퍼마켓 아이디어는 가장 필요로 한 순간에 정확하게 그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그는 셀프 서비스로 점원수를 줄여 상품가격을 확 낮췄고 판매 이윤도 낮췄으며 자동차를 타고와서 많이 사갈 수 있도록 넓은 주차장도 만들었다. 그리고 '킹 컬렌 슈퍼마켓' 은 창업 2년만에 미국 최대 슈퍼마켓으로 성장했으며 이와 더불어 1930 년대 중반까지 미국 전역에 대형 상점들이 생기며 새로운 유통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1999년 8월 17일 터키에서 7.8 규모의 강진 발생

터키 이스탄불과 이즈미트 등 인구 밀집 지역에서 1999년 8월 17일 새벽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새벽 3시2분 쯤 시작되었는데 이즈미트 부근을 진앙지로 시작되었으며 동쪽으로 430km 거리인 수도 앙카라에서도 흔들림을 느낄 정도로 강력했다. 지진이 발생하면서 많은 도시들은 전력 공급이 중단되어 암흑 상태로 변했고 이즈미트 정유 공장에는 큰 불이 났으며 이스탄불 내에 있는 20여개의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등 터키 전역이 공포에 휩싸였다. 특히 지진은 45초간 계속되었고 이로 인해 15,000여 명이 숨지고 25,000여 명이 부상 당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터키와 주변의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의 지역은 아라비아판과 아프리카 암, 유라시아 판이 만나는 곳에 끼여 있어 지질학적으로 지진의 위험이 높은 지역이며 특히 터키는 이 세 암판이 충돌할 때마다 지각운동이 발생되어 잦은 지진으로 불안함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터키 지진 참사 현장에는 한국의 119 국제 구조대도 투입되어 구조활동을 펼쳤다.

2003년 8월 4일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투신자살

현대 그룹을 일궜던 정주영 명예회장의 5남인 정몽헌 현대 아산 이사회 회장이투신 자살했다. 2003년 8월 4일 오전 5 시 50분쯤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본사사옥 뒤편 주차장 앞 화단에서 정회장이 쓰러져 숨져있는 것을 사옥 청소원 윤모씨가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으며 국내외 언론은 이 사건을 크게 보도했다. 당시 정회장은 경영난과 대북송금 및 현대비자금 조성 수사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매우 컸던 것으로 전해졌으며 자살하기 하루 전인 8월2일에도 12시간이나 검찰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헌 회장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과 부인, 자녀 앞으로 4장의 유서를 통해 '대북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길 바란다'는 내용과 '나의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주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정몽헌 회장은 연세대 국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1975년 현대중공업 차장으로 현대 그룹에 입사했다. 이후 부인과 미국 유학길에 올라 뉴저지 페얼리디킨슨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이후 1981년 현대상선 사장을 시작으로 최고 경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신임을 바탕으로 1998 년 형인 정몽구 회장과 함께 현대그룹 공동회장이 됐다. 이후 2000년 6월 현대 아산 회장에 취임하면서 대북사업에만 전념했었다. 정몽헌 회장의 장례식은2003년 8월 8일 오전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