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 브레드
금요일 오후, 장바구니를 들고 마켓을 간다. 우선 매장을 한바퀴 둘러 보고 난 뒤 종이에 적어온 필요한 품목의 리스트를 보며 물건을 카트에 담기 시작한다. 아침식사용으로 계란과 라이스 밀크, 아몬드 밀크를 구입하고 블루베리와 아보카도를 이리저리 살핀다. 그러나 정육코너 앞에선 몇 주 전과 다른 가격표에 망설임을 반복하다가 슬며시 손에 잡았던 것을 내려 놓기로 한다.

나는 다시 냉동코너를 들여다 보다가 한동안 품절이었던 한국산 파전과 비빔밥을 발견하자 절로 미소가 번진다. 미국 마켓에 당당하게 진열되어 있는 우리나라 상품이 무척 자랑스럽다. 쇼핑을 끝낼무렵 빵 코너로 들어선다. 맛있게 만들어진 빵들이 고소함을 뽐내며 내 손을 기다린다. 하지만 나는 주저없이 모양도 없고 냄새도 없는 그 빵을 선택하기로 한다. 그리고 혼잣말로 속삭인다.

"내 사랑은 바로 너뿐이야."

집으로 돌아온뒤 나는 서둘러 그것부터 꺼내어 오븐에 올린다. 오븐 틈새로 살며시 퍼지는 구수함이 저 먼 중동의 모래바람을 실어 나를 그리스까지 안내한다. 어느새 부엌은 찬란한 황금 밀밭으로 넘실거린다. 어렸을 적 엄마가 가마솥 밥위에 쪄주던 쑥개떡 모양을 닮은 넓적한 이 빵의 반전은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된다.

언제부터였을까? 한조각 빵을 입에 넣고 씹을 때마다 이스트를 넣지 않은 피터 브래드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안에서 맴돌던 밀 반죽이 마침내 침샘에 녹여져 목구멍을 타고 흘러 내려갈 즈음 인생길 굽이굽이 돌아 여기까지 살아내는 동안 걸어온 삶의 대부분은 부풀어 오른 빵을 포장하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이스트를 넣지 않은 삶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한 여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학벌과 지위와 인물, 배경까지도 자랑하고도 남을 K의 스펙은 그녀를 아는 모든 이들의 부러움이다. 그러나 K는 언제 어디서나 결코 나대는 일이 없다. 원래 타고난 성품이려니 생각했으나 그녀의 고백으로는 중단없는 '내려놓음'의 연습이라고 귓띔을 한다.

대중앞에 서기라도 하면 때를 만난듯 자화자찬으로 흥분해 하는 나와는 사뭇 다른 그녀, 습관처럼 거품을 집어 넣었던 나의 일상생활의 흔적을 지우개로 말끔히 청소하기로 작정한 오늘, 이미 그녀를 닮고 있는 것 같아 즐겁다.

에스더 최(수필가)
버클리문학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