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그 사람이다
누군가의 초대로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눈으로 냄새로 또 순간적인 느낌으로 모든 것이 보여지고 느껴진다. 말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그 안에 자리 잡은 채 보듬고 있는 모든 것 스스로가 낯선 사람에게 속삭이며 표현해준다. 다른 이들을 위한 넓이와 높이가 아니라 나를 위한, 선물 상자의 화려한 포장지를 벗겨내려는 조바심처럼 바깥의 나를 벗고 온전한 속살을 꺼내놓는 곳이다. 벗어버리는 시원함으로 무겁게 치장한 무게를 내려놓으면서 아무도 모르는 안도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이다.

맨 처음 모르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입고 있는 옷과 모습으로 처음 마음이 시작한다. 조금씩 시간이 흘러가고 서로를 알아보면서 마음을 열고 편안해지는 어느 날, 자신이 사는 곳으로 초대하여 속내를 보여준다. 집이라는 건 이쁜 옷을 입고 진한 화장을 하고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하여 한순간에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나온 시간과 함께 동화되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삶의 눅눅한 자국들과 정성이 남아있는 곳이다. 몇십년 전 겨울 아주 많이 힘든 시기를 겨우 넘긴 후, 잃어버렸든 집이 그리워 다른 이들의 집을 놀러 다닌 적이 있다.

이쁘게 가꾸며 사는 모습이 부러웠고 언젠가 다시 집이 생기면 나도 그러리라 꿈꾸고 희망하였다. 시간이 흐른 후 결국 나만의 집을 갖게 되었고, 원하는 그림을 마음껏 벽에 걸고 오래된 골동품들을 꺼내 놓으며 숨겨둔 욕심을 아주 기다랗게 펼쳐 놓았다. 화려하지 않아도 크지 않아도 비싸지 않아도 아무 상관 없다. 다만 무엇을 품고 어떻게 견뎌내고 있으며 그동안 걸어온 긴 걸음들을 편히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가끔 한밤중 선잠에 깨어, 지금 있는 곳이 어딘가 싶어 구겨진 긴 잠옷 차림으로 온 집안을 휘휘거리며 돌아다니곤 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있는지 또 스스로 지니고 있는 지나온 흔적들은 괜찮은 모습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이다. .

이제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살고있는 공간 . 집이 바로 자신이 살아온 세월과 자욱들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처럼, 더는 감추고 싶지도 포장하고 싶지도 않다. 아직도 여전히 큰 묶음으로 남아있는 시간을 나누며 살아갈 준비에, 설렌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