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마음속에 있는 지도 한장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제일 먼저 어디로 갈까 하며 목적지를 결정한다. 그러면서 가고자 하는 곳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면 빠르게 갈 수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서둘러 지도를 챙겨본다. 결국 산다는 것도 마음속에 있는 지도 한 장 가지고서 떠나는 긴 여행 같다는 생각이다. 잠시 떠나는 것이 아닌, 삶이라는 여정의 지도를 따라 세상의 숱한 여러 갈래의 길 위에서 나만의 선택을 하고 또 가끔은 길을 잃고 막막한 무서움에 있을 때도 있지만, 뜻하지 않은 산들바람을 맞으며 숨차게 올라온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안도감에 서있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잘 알고 있다. 다만 모르는 척 아니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영원할 거라 착각하며 살지만, 모두가 같은 목적지의 같은 길의 끝이다.

모르는 거 투성이의 미국 생활에서 운전보다 먼저 배운 것이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법이었다. 넓디넓은 땅에서 처음 가보는 길을 가는 유일한 방법이, 지도를 보며 하나씩 길 이름을 읽고 더듬거리며 골목을 돌아 집 번호를 확인하면서 찾아가는 것이었다. 목적지를 찾느라 복잡한 길 위에서 조금 서성거려도 뒤를 따르는 차들도 이해해주면서 기다려 주던 시절이다. 작은 글씨의 동네 이름과 큰길이 만나는 교차로를 노란색 형광펜으로 길게 그으면서, 한번 왔든 길의 기억을 떠올리며, 잘도 돌아다녔다. 그러든 어느 날 짧은 여행으로 떠났든 남쪽 1번 도로가 심한 비바람으로 끊어져 있어 급히 지도를 보고 찾은 길에서, 너무 일찍 모퉁이를 돌아버려 황망한 산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체, 해는 저물고 이른 점심 탓에 배도 고프고 또한 자동차의 연료 표시도 거의 바닥으로 깜깜한 어둠 속에 갇힌 적이 있다. 막막함과 두려움으로 한참을 헤매다 어쩌다 올라선 산 귀퉁이를 돌자마자 갑자기 환해진 불빛의 길 위 주유소를 만나는 신비한 놀라움에 깊은숨을 내쉬며 큰 울음을 터트렸었다. 물론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서두르지 않고 그나마 길을 잃지 않고 가려고 마음속 지도를 몇 번이나 보며 모퉁이를 확인하고 가지만, 가끔은 막다른 골목길과 짙은 먹색의 어둠 속에서 헤매이다 뜻하지 않은 경이로운 환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던 적도 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젠 색도 바래졌고 접어둔 네 모퉁이가 닳고 해어져 잘 보이지 않는 종이 지도와, 철들면서 챙겨본 마음속에 펼쳐져 있는 얼룩투성이의 낡은 지도 . 그 둘을 함께 품은 체, 기다란 미국에서의 삶을 여전히 살아간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