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한국말 할 줄 알아요?

한국에 사는 친지나 친구들로 부터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미국에 오래 살았으니 영어는 잘 하지?" 물론 대답은 대충하고 화제를 돌린다. 미국 현지에 사는 이민자들 대부분이 공감하듯이 오래 살았다고 영어가 술술 나오진 않는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에서 영어만 사용한다면 모를까 웬만한 이민자들 대부분이 언어의 장벽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타민족들도 마찬가지로 주류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영어 배우는 클래스를 운영하고 통역서비스를 위해 많은 노력과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한인인구가 많은 LA지역의 경우 우체국 등 관공서에도 한인직원들이 많아 영어사용에 불편한 노인들도 어렵지 않게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북가주지역만 해도 DMV나 병원을 찾을 경우 영어가 유창한 지인이나 자녀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최근 본인의 가족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의료진과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한인의사와 간호사가 한국말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전문적인 의료용어나 법정용어는 일반인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분야임은 틀림없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스마트폰으로도 통역이나 번역이 어느정도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또한 미국내 웬만한 관공서나 기업들도 자체 통역서비스를 가동하여 이용자들의 불편을 최소화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글로벌기업들은 그래서 이중언어가 능통한 인재들을 선호한다. 각 나라들과 마케팅을 하려면 상대국가의 언어는 물론 문화까지 이해하는 연결통로가 필요해진 것이다.

한 이민선배가 고백한 얘기가 생각난다. 젊을때 이민을 와서 자녀를 낳았는데 영어가 부족한 부모들이 한이 맺혀서 집에서도 한국말은 전혀 쓰지않고 영어로만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히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사람과 결혼까지 했는데, 문제는 대기업에 취직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면담할 때마다 '한국말 할 줄 아냐'고 물어보는 바람에 원하던 기업체 몇 군데는 들어가지 못하고 되었고, 부모들과도 깊은 대화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린시절부터 살았다면 영어는 불편하진 않겠지만 한국어 구사는 별도의 문제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주말이면 자녀들을 한국학교에 보내서 한글을 익히는게 유행처럼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이땅에서 살아가려면 영어는 물론 모국어도 할 줄 알아야 대접받는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양쪽 언어를 다 잘 한다는 것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영어도 잘 안되면서 가끔 한국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 본인만의 고민일까?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