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역사

1991년 9월 17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유엔에 가입

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 30초, 인구 30 만명의 도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원자폭탄은 지름 71cm, 길이 3.05m 무게 4t 으로 '리틀보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당시 히로시마는 공습 경보가 한차례 지나가고 시민들이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던 중이었다. 투하된 원폭은 오렌지 빛 섬광과 거대한 불덩이를 보였으며 도시의 60%가 파괴되었고 반경 500m 이내의 모든 생명체는 현장에서 즉사, 이후 24만명이 방사능과 고열 등의 후유증으로 죽었다. 원폭 투하 후 미국은 일본에 항복을 권유했지만 일본 지도부는 항복하지 않았고 히로시마 피폭 사흘 후인 8월 9일 새벽 미 공군의 두번째 폭격기가 나가사키에 4.5톤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이로 인해 1946년까지 14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이후에도 항복하지 않는 일본을 향해 추가적인 원폭 투하 요구가 높았지만 미국은 더 이상의 원폭은 투하하지 않았으며 대신 재래식 폭탄을 퍼부었고 소련 역시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공격을 개시했다. 이후 8월15일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인해 시작된 태평양 전쟁이 일본의 항복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

2003년9월 ‘태풍 매미’ 한반도 강타

2003년 9월6일 괌 부근 해상에서 발생한 열대저기압이 14호 태풍 매미가 되었다. 열대 저기압에서 느리게 발달했기 때문에 기상청에서도 태풍으로 인정하는데 시간이걸렸고, 그 사이 태풍 매미는 중심기 압 910hPa 최대풍속 55m/s에 달하는 최강 급의 태풍으로 성장했다.
1분 평균 최대 풍속이 75m/s의 태풍은 진로를 서서히 북쪽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9월11일 새벽 일본 오키나 현 미야코 섬을 통과해 동중국해로 들어선후 방향을 전환해 한반도를 향해 북상, 제주 여수 통영 대구를 거쳐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 태풍 매미로 인해 한반도는 해일 폭우 강풍등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전국적으로 145만 가구가 정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고층 건물에서는 유리창이 바람에 의해 파손되고 도심은 간판과 뽑힌 가로수 깨진 유리창이 굴러다녀 전쟁터와 같은 모습이 되기도 했다.

특히 강원도 영동 지방에서는 2002년 태풍 루사때의 복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태풍 매미에 의한 폭우가 쏟아져 심각한 피해가 되었다. 태풍 매미의 피해 사항은 사망 및 실종이 132명 이재민만 6만1천여명이었고 재산피해가 4조 7천억여원으로 집계되었다.

1988년 9월 서울에서 제24회 하계 올림픽이 개막

서울 올림픽은 9월17일부터 10월2일까지 16일동안 열렸으며 IOC 회원국 160개국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올림픽이었다. 당시개최 후보국은 한국과 일본이었고 투표결과 52대27로 우리나라 서울이 개최국이 되었다. 88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금메달12개 동메달 10개 은메달 11개 총 33개의 메달을 따며 종합 4위의 성적을 올렸다. 88 서울 올림픽에서는 태권도가 처음으로 시범 종목이 되었고, 그동안 대한민국과 교류가 없던 공산 국가와의 관계가 이 대회로 인해 급속도로 개선되었다. 88올림픽 이후 한국은 경제 발전은 일본보다 높이 평가되었다. 투자뿐 아니라 수출 또한 올랐으며 유럽 내 한국의 가전 제품이 80% 이상 현지 생산을 하게 되었다. 동유럽 국가들에게 가난에 찌들고 위험한 나라라는 오해를 받고 있던 한국은 올림픽을 통해 동유럽 국가들에게 한국의 발전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동유럽 국가들과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발전했다.

1977년 9월 한국인 최초 고상돈 대원 에베레스트 정복

고상돈은 제주도에서 태어난 산악인이다. 청주대학교 시절 산악반에서 전문적 등반 훈련을 받았다. 1970년부터 대한 산악 연맹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고1974년부터 1977년까지 에베레스트 산 원정대 훈련에 참가했다. 당시 에베레스트산 원정대 훈련대는 1971년 네팔 정부에 입산 허가서를 제출한지 6년만인 1977년에 허가를 받았고 9월15일 낮 12시50분 에베레스트 산을 한국인 최초로 등정하였다. 고상돈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상의 눈을 파헤친 뒤 성경 한권과 사진 석장을 묻음으로써 먼저 간 동료들을 추모했다.고상돈은 1979년 알래스카산맥의 데날리산 원정대에 참가하여 등정에 성공했지만 하산 도중 1,000m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한라산 해발 1.100m 고지에 그의 묘소가 있으며 그가 죽은 후 고상돈 대원 기념 사업회가 조직되어 해마다 추모사업을 벌이고 있다.

1972년 9월 5일 검은9월단, 뮌헨올림픽 테러

1972년 9월 5일 월요일 새벽 4시 자동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8명의 검은9월단 테러범들이 뮌헨 올림픽 선수촌을 급습했다. 테러범들은 이스라엘 선수들이 묵고있던 31동 선수촌에서 침실에 있던 역도 선수와 레슬링 코치를 사살하고 남아있던 9명의 선수들을 인질로 잡았다. 검은 9월단은 1970년에 만들어진 팔레스타인 테러 집단으로 그들은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구금되어 있는 팔레스타인 정치범 236명과 일본과 서독 출신 적군파 요원들을 4시간내로 석방하고 안전한 탈출로를 보장하라는 요구를 했다. 또 당일 9시까지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30분 간격으로 인질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인질 전원을 석방한다면 테러리스트들이 제 3국으로 가는 것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다른 요구 조건에 대해서는 강경했다. 결국 인질범들은 자폭하는 동시에 선수 9명을 모두 살해했고 이 과정에서 인질범 5명과 독일 군경 2명도 사망하였고 인질범 3명은 생포되며 구조 작전은 실패했다. 사건 직후 뮌헨 올림픽의 모든 경기가 중단되었고 주경기장에서 추도식 이후 다시 경기가 재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