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위로가 필요한 시대
'마스크를 벗고나면 세상이 환하고 좋은 일만 생길 줄 알았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친 사람들에겐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막연하게나마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물가는 하늘 높은지 모르게 오르고 사회가 불안정해지며 각종 범죄가 만연하다. 개스비는 주춤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비싸고 안전한 동네가 없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 길가에 차유리창 깨진 흔적들을 자주 본다.
자연재해도 보조를 맞추는지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오기도 하고, 폭우가 내리고 태풍이 불어 피해자들의 눈물어린 하소연을 듣게 된다. 기후변화로 이같은 자연재해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끝날 기미도 없이 핵무기가 사용되는 3차대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세계 각국의 화폐가치는 동시에 떨어지고 주식시장도 연일 하한선을 그리며 투자자들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굴지의 글로벌기업들도 불경기를 타개하기 위해 수많은 직원들을 해고하고 있고, 개인 비즈니스들도 회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는 가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던 좋은 직장을 잃거나 빚까지 얻어 마련한 가게를 털고 나올때 그 심정은 어떠하랴. 본인 혼자도 아닌 가족의 생계가 막연하거나 렌트비를 밀려서 집을 비워줘야 할 때 드는 절망감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얼마 전 본국에서 온 가족이 탄 차가 물로 뛰어들어 모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사업실패라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절망감으로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이다. 위기와 고난의 시간에 인간은 정신적으로 황폐해지며 한없이 약해진다. 한국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낸 나라로 주목받고 있지만 한편에는 노인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오명도 갖고 있다. 희망의 끈을 놓았을 때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오기가 정말 힘들어진다.
가까운 가족을 코로나로 먼저 다른 세상으로 보냈을때, 아픈것을 아는데도 감염위험 때문에 병원을 찾지 못하다가 뒤늦게 불치의 병이라는 사실을 알았을때도 깊은 좌절감을 가졌을 것이다. 이런 상실의 시대에 진정한 위로가 필요하다. 진심어린 격려와 위로의 말이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소망을 갖게 하고 한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자식을 먼저 교통사고로 보내고 넋이 나가있는 부모들 앞에 한 사람이 다가와서는 "작년에 내 아이도 비슷한 사고로 보냈어요"라고 말하자 서로 부둥켜 안으며 함께 울었다는 일화를 들었다. 내가 처한 고난과 아픔이 남들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도 있음을 알게한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