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지루한 한인행사 이제 그만
팬데믹으로 인한 오랜 공백기를 지나며 한인사회 각종 행사들이 다시 열리고 있다. 3.1절 등 국경일 기념식과 북가주내 각 지역 한인회가 주최하는 회장 취임식 등 그동안 열리지 못했던 행사들이 한꺼번에 무더기로 개최되고 있다. 몇 년간 못보던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안부를 묻는 등 정겨운 풍경과 지역 한인들이 다시 결집을 하는 모습을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거의 모든 행사의 공통점이 있는데 너무 지루하다는 것이다. 행사의 격(?)을 높인다는 취지로 참석한 한인단체장들에게 돌아가며 축사나 인사말을 시키는데 많을 때는 10명이 넘기도 한다. 보통 2분 내외로 간단한 내용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혼자 5분 이상을 소요하며 주절주절 본인의 얘기를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보면 축사하는데 걸린 시간만 30분을 넘기며 참석자들이 짜증을 내기도 한다.
행사의 진행패턴은 비슷하여 주관하는 단체장이 행사의 의미를 설명하는 인사말을 하고 난 후에는, 이지역 본국정부의 대리인 격인 총영사의 인사, 북가주내 각 지역의 한인회장들이 돌아가며 인사, 민주평통이나 유력한 한인단체장들의 인사가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각 지역 노인회장, 해당지역 주류정치인들 까지 가세하면 10명이 쉽게 넘어가는 형태이다. 지역 특성상 1시간 이상의 이동거리를 감안할 때 바쁜일정을 쪼개어 멀리 찾아간 사람들이 지루하게 하나마나한 소리만 듣다가 오는 것이다.
간혹 행사의 사회자는 친절하게 참석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소개하며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주최측은 행사 참석인원을 확보하려고 각 지역 노인회원들과 청소년단체의 학생들까지 동원하기도 하는데, 한국말이 서투른 어린 청소년들은 더욱 지루할 것이고, 영어로 대화가 힘든 어르신들에게 주류정치인의 장황한 영어연설은 화장실에 갈 핑계를 주기에 충분하다.
몇몇 단체들은 이와같은 불합리한 행사운영을 자각하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파워포인트를 이용하여 행사의 진행을 빠르게 하고, 축사나 인사말도 영상으로 제작하여 틀어주는 등 업그레이드 시키는 분위기다. 행사 중간에 축가나 문화행사를 끼워넣어 지루함을 덜어주기도, 사회자가 연설시간을 자제시키는 강제력도 동원한다. 행사장에 커피와 음료, 간단한 다과를 준비하여 자유스럽게 행사를 관람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비싼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는 클래식 공연에서도 관객들의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해 중간에 매직쇼를 하는 마당에 언제까지 옛날 방식의 행사를 고집해야 하는가. 얼굴도장 찍으려고 참석하는게 아니라 의미있고 재미있는 프로그램 때문에 자진하여 참석하는 행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주최측은 행사진행을 고민하는 시간과 자문을 구하는 등 노력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시대가 바뀌고 있어서 아까운 시간을 지루하게 보낼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