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젖과 꿀이 흐르던 땅에 피가 흐른다

지금으로 부터 약 4천년 전 중동 지역에 한 자식이 없는 노인이 살았다. 그가 믿는 여호와라는 신(神)은 이 노인에게 "너로 인해 큰 민족을 이루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현재 세계인구 약 80억명 가운데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60억명 정도라고 하는데, 그 중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유대교를 믿는 신자의 수를 합하면 40억명 이라고 한다. 이 40억명 신자들이 믿음의 시조로 모시고 있는 사람이 위에 언급한 노인인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이다.

이 아브라함이 늦게 얻은 아들 중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자손이 번성하게 되는데 한 갈래가 '이스마엘'로 이어지는 아랍민족(이슬람권)이고, '이삭'으로 이어지는 유대인이 현 이스라엘를 포함한 기독교의 본류라고 구분 짓는다. 가뭄으로 인해 먹을것이 없었던 아브라함의 후손들 중 이삭계열은 이집트로 이주했고 백성이 많아진 이들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 즉 현 팔레스타인 지방을 정복하고 정착하게 된다.

물론 그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가 망하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2천년 동안이나 나라없는 디아스포라 신세로 살다가 1948년에야 현 팔레스타인 지방에 '이스라엘'을 재건국하게 된다. 종교적으로 민족적으로 다른 주변의 아랍국가들과 여러차례의 전쟁을 치루기도 했지만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군사력을 키워왔다. 또한 영토내에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인 가자지구를 둘러싸고 잦은 무력충돌로 중동의 화약고로 알려져왔다.

지난달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사상 초유의 공격을 감행하여 수천명이 희생되었고, 이스라엘도 보복 공습으로 양측 모두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인 것은 주변의 아랍계 국가들이 참전을 준비하고 있어서 이는 3차 세계대전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세계의 경찰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미국이 중동지역에서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상태에서 산유국이 대부분인 주변 이슬람권 국가들이 향후 어떤 자세를 취하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요즘 국제외교의 현실은 예전보다 복잡미묘해졌다. 자국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집권세력의 정치적 입장, 국민들의 여론, 주변국들의 반응, 종교적 명분 등등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너무 많다. 더구나 중동지역은 산유국들이 많기에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국제유가를 둘러싸고 각국들의 입장이 다른 것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가뜩이나 인플레가 높아진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이들과 전혀 관계도 없는 나라 국민들까지 개스비를 걱정하게 되었다. 종교를 떠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 형제였던 이들이 화해와 공존을 택하기를 기원할 뿐이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