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여성 운동가, 이용수 여사

이용수 여사를 팔로알토 미쉘팍 커뮤니티 센터에서 만났다. 고운 한복이 잘 어울리는 인자하고 단아한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녀가 연설을 시작하자 솔직하고 당당한 목소리에서 몸속 깊이 가라앉아있던 작은 체구로 감당할수 없었을 것 같은 깊은 한이 바로 내게 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15세 어린나이에 일본군에 납치되 모진 고문과 차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잔혹한 일들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역경의 세월을 거치고 마치 자갈을 뚫고 나와 화사하게 피어난 탐스런 꽃처럼 그녀는 이제 밝은 희망을 품고 세계 모든 여성의 인권 회복을 위해 위대한 여성 운동가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음에 가슴 뭉클한 감동이 전해진다.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이번 이용수 여사의 샌프란시스코 방문의 목적은 샌프란시스코시에 상정된 위안부 기림비 결의안의 지지를 표명하며 역사의 증인으로 시의회에서 증언을 하기 위함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시의회에서 에릭 마 시의원에 의해 상정된 세계 2차 대전당시 일본 군에 의해 강제동원된 성노예 여성들을위한 위안부 기림비 결의안이 일본계 커뮤니티의 큰 반대에 부딪혔었다.

이 결의안은 2012년 중국계 커뮤니티에서 합심하여 세계 2차 대전에서 일본 군이 수십만명의 중국인들을 난징에서 강간하고 무차별 학살한 것을 기리는 '난징 대학살 시정 협회'의 발의에서 시작되었다.

그후 2014년에 이르러 전쟁당시 중국인 희생자만이 아니라 한국 위안부를 기리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이 결의안은 전쟁범죄에 대해 현재의 일본인들을 비난하는것이 아니라 전쟁당시의 정부와 군을 비판하는것이다. 위안부로 고생하던 많은 희생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생존한 사람들이 많기에 그들을 기억하고 명예를 회복시키려는 이유였다. 기념비의 목적은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앞으로 절대 이런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것을 다짐하려는것이다.

1930년부터 약 15년간 세계 2차 대전에서 말로 형용할수 없는 각종 전쟁범죄, 강간, 학살, 각종 고문, 잔혹행위가 지속되었었다. 종전후 소수의 일본 군 지도자들이 도꾜, 난징, 요코하마, 마닐라, 카바로브스크(Khabarovsk)등지에서 조사와 처벌을 받았지만 대부분은 처벌을 면했다.

2001년 샌프란시스코 시의회에서 No. 842-01 결의안이 통과됐는데, 이는 일본정부에 미국과 일본의 평화 조약 50주년 기념에 세계 2차대전당시의 잔혹행위에 대해 전적으로 인정하고 사과와 함께 생존자들에게 그들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해줄것을 촉구하는것이다.

2007년 미 하원에서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이 발의한 결의안 (H.Res.121)이 가결되었는데, 이 결의안은 일본 정부가 전쟁 당시 어린 여성들을 강제로 성노예로 혹사시킨 것에 대해 정확히 인정하고 사과 와 함께 역사적인 책임을 가져야함을 촉구하는 것이다.

2014년 기결된 '위안부 결의안'의 이행 촉구 내용이 담긴 통합 세출(예산 지출) 법안(Fiscal Year 2014 Consolidated Appropriation Act)이 2014년 1월 15일 상원에서도 통과되어 버락 오바마대통령이 사인했다.

이용수 (87세, 위안부 생존자, 현재 위대한 여성 인권 운동가)

샌프란시스코에 증인으로 참석해 증언을 한뒤 샌프란시스코 시의 회에서 만장일치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그녀의 증언의 일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일본이 저지른 죄악을 증오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후대를 위해서 우리는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하고, 진실은 언젠가는 꼭 밝혀질것입니다. 일본 지도자들에게 사과를 촉구합니다. 현재 한국에 47명의 생존자만 남았습니다. 저는 과거사의 증인으로 이자리에 서게 되었지만 더 나아가 저는 전세계 모든 여성들의 인권 회복을 위한 인권 운동가로 생명이 다 할 때 까지 활동할것 입니다.'
일본 우파중 하나인, 코이치 메라(Koichi Mera)는 글렌데일시의 위안부 기념동상에 반대하는 소송을 했으나 기각되었던 사람인데, 샌프란시스코 시의회에서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들은 모두 날조된것이라 주장했고, 이용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서 "당신은 거짓말 쟁이다"라고 소리쳤다. 데이빗 캠포스 (Davie Campos) 수퍼바이저 는 발언을 한 일본계 국수주의자에게 "창피한 줄 알아라" 고 말하며 이용수 여사에게 한 인신공격적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용수 여사는 15세때 일본군에게 집에서 납치당했고 가미가제 비행기지로 이송된 후 각종 고문과 유산을 경험했다. 전쟁이 끝난 뒤 2년후 17세때 집으로 돌아갈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에 대해 침묵했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이 문제에 대해 말할 용기가 생겼다. 그녀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아 왔다.

마이크 혼다의원 (Michael Honda, U.S. Representative)

2007년 위안부에 대해 일본 정부로 부터 공식적인 인정, 사과, 그리고 역사적 배상을 촉구하는 하원 결의안 121을 발의하고 법안을 통과시킨 혼다 의원은 에릭 마 시의원의 위안부 결의안을 지지하는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었다. '세계 2 차 대전에서 약 20만명의 어린 여성이 강제로 납치되 성노예로 고문을 당했다. 한국에 55명, 필리핀에 26명, 타이완에 5명 그리고 아태지역에 적은 수가 나누어져 생존해 있습니다. 인신매매는 과거의 역사적 문제만이 아니고, 현재의 인권문제와도 결부되며, 이 기림비는 역사적 행동일 뿐 만 아니라 현재의 성노예와 인신납치에도 항의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에릭 마 (Eric Mar, SF Supervisor)

'이번 결의안 기념비는 위안부를 기리는 의미와 함께 현세대의 2천만명 이상의 인신매매 피해자들도 자각하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평화와, 정의 사랑과 치유의 힘을 지니고 이용수 할머니가 오셔서 더욱 큰 힘이 발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단계는 샌프란시스코 시장 및 관련 부서와 공조하여 기념비의 디자인과 장소를 토의할것 입니다. '위안부 정의 연합'에서 공공 장소에 기념비를 세울 $14만불의 성금이 개인들의 펀드레이징으로 이미 모아져서 샌프란시스코의 유태인 학살 이나 아르메니안 대학살 기념비 비슷하게 세워질것으로 생각합니다. 기념비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고, 우리 커뮤니티가 이 기념물로 기억하고 각성하는 일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적절한 교육과 프로그램으로 후대에 걸쳐 이를기억하며 정의의 메시지가 이어져나가야 합니다. 기념비를 세우는 기간동안 일본계 미국인들과 되도록 공조하여 서로 신뢰를 쌓도록 노력할것입니다. 앞으로 1년 안에 기념비를 완공하려고 계획중입니다.'

쥴리 탱 판사 (Julie Tang, Co-founder of the Rape of Nanjing Redress Coalition)

샌프란시스코 시청에서 위안부 결의안에 대해 시의회 연설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결의안을 지지합니다. 1970, 80년대에 미국에서 일본계 미국인들이 제 2차 세계대전때 집단 캠프에 불합리하게 수용되었던것에 대해 중국계와 일본계가 손을 잡고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아시안인으로서의 인종차별에 반대해 함께 싸워왔습니다. '난징 대학살 시정 연합'은 저와 일본계 클리포드 우예다(Clifford Uyeda)가 공동 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수의 일본계 분들이 동참하여 난징 대학살에 대해 일본정부에 사과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은퇴한 판사입니다. 저는 진실과 공평, 정의를 믿습니다.
위안부들의 고통을 기억해야 하며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그분들의 명예와 존엄성을 기리는것은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릴리안 싱 판사 (Liliian Sing, Co-founder of the Rape of Nanjing Redress Coalition)

샌프란시스코 시청에서 위안부 결의안에 대해 시의회 연설시 다음의 사항을 분명히 밝혔다. '이 결의안이 일본을 몰아세우기 위한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위안부 결의안 때문에 일본계 미국인들이 피해를 받을 수 도 있다는 주장은 전혀 맞지 않습니다. 현재 일본계 미국인들은 전혀 이 문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저희는 어떠한 증오 범죄에 대해서도 강력히 저항 할것 입니다.'

쥴리 수 (Julie Soo, Attorney,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

'저는 어머니를 통해 어린 여자들을 그들의 집에서 납치해가려는 일본군들로 부터 몸을 숨겼었다는 일화를 들으며 위안부란 말을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필리핀에는 수천명의 필리핀 위안부들의 명단이 파악되어 있는데, 현재 그들은 80~90대의 고령임에도,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의 사과를 기다리며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성노예로 고통을 당했던 어린 여성분들을 기리고 기억하는 기념물을 샌프란시스코에 세우는것은 굉장히 중요한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희생자들을 기릴 장소가 필요하고, 마음에 되새겨볼 장소가 필요하고, 다시는 이런 잔인한 일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각성을 할 장소가 필요합니다.'

가주 한미 포럼 김현정 사무국장 과 미주 한인 상공회의소 강승구 총 연합회 회장

이번 이용수 여사의 이번 샌프란시스코 시의회 방문을 공동 초청했다. 특히 상공의 총연은 이번 이용수 여사의 여행 경비 $5000을 자체 부담했다. 샌프란시스코 시의회가 지난달 22일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건립 촉구 결의안'을 통과 시킨 가운데 결의안에 주축이 됐던 한국계, 중국계, 필리핀계, 유태계, 종교계 및 여성단체들이 기림비 건립 공식 단체 이름을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정의연합(SF Comprot Women Justice Coalition)'으로 정하고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강 회장에 따르면 한달에 한번 정기 모임을 가질 예정이라 전하며, 기념비 장소와 디자인 선정작업 과정에 일본계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며, 이러한 방해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한인 사회의 지지와 참여를 호소했다.

리타 세멜 (Rita Semel, SF commissioner, Former chair of the SF interfaith Council)

'이 결의안을 지지합니다. 저는 유태계입니다. 과거 유태인을 학살했던 독일에 대해 현재 악감정은 없지만 과거 자행되었던 유태인 학살의 기억은 절대 잊지말고 그들의 넋을 기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41년의 일본이 현재의 일본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당시 신음하고 죽어간 희생자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며, 사실상 현재는 인신매매를 통해 비슷한 고통을 받는 희생자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여러 단체와 많은 사람들이 우리 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관심을 갖고 노력해온 바가 결실을 맺어 위안부 기림비 결의안이 통과 된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 한인커뮤니티에서도 좀더 많은 한인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이 프로젝트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