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김의 한 잔의 커피 향 - 내일 죽어도 사과나무를 심으련다

갑자기 생각도 못 했던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 일상에서 우리는 나름 적응할 길을 찾아야만 한다. 갑자기 죽음을 맞은 사람들이 보도되는 뉴스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함께 숙연해지는 시간, 우리는 이때가 삶을 다시금 정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갑자기 저렇게 죽을 줄 본인들이 어떻게 알았겠어? 오늘이 가장 의미있고 소중하기에 행복하게 보내야지, 너무 욕심부려 아둥바둥 살 필요가 없어" 뉴스를 함께 보던 남편이 한마디 한다.

인생의 허무함을 말하는 남편에 반면 나는 지금의 코로나와 암울하고 절박했던 이민 초기의 순간이 갑자기 오버렙되서 떠오른다.

나는 미국에 교회 피아노 반주자 종교 비자로 이민을 시작했다. 그런데 교회가 일년도 못되어 문제가 생겨 직장과 집을 다 정리하고 온 상태라 한국으로도 미국에도 머물지 못할 사면초가에 처했었다. 그야말로 불법체류자가 될 상황에 남편과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다. 그때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컬리지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었는데 학창 시절에 배운 영어를 20년이 지나 공부하는것도 버거웠지만, 무엇보다 영주권 문제로 마음이 불안정해서 도저히 공부가 머리에 들어가질 않았다. 중도에 그만둘까 갈등을 하고 있을 때 클라스에서 만난 한국 친구를 잊을 수가 없다.

늘 눈에 수심이 가득 차 있었던 그녀와 서로 개인사는 모른척하며 지내다 기회가 되어 학교 카페에서 함께 차 한잔을 나누게 되었다.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내게 튀어나오는 그녀의 말 한마디가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내일 법정에 나가 싸워야 하는데도 학교에 나와요" 한다. 두 자녀를 둔 그녀는 이혼이 진행 중이었다. 자녀의 양육권을 두고 내일 수업이 끝나는 대로 재판을 위해 법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 중요한 큰일을 두고 지금 이까짓 공부가 무슨 대수야? 공부는 아무 때나 하면되는거구." 라고 그녀를 향한 나의 핀잔에 "나는 엄마예요.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아이들 못 찾아요. 미국에서 경제 능력 없음 아이들 양육권도 뺏겨요. 열심히 공부해서 미국 주류 사회에 들어가야 하고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강하게 일어선 모습 보여주고 싶어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나는 장하다는 칭찬보단 독한 여자라고 영주권 때문에 혼잡한 내 상황을 당연시 합리화하며 나는 영어 공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때 접었다. 그 후 다행히 남편의 직장으로 무사히 영주권을 받고 이핑계 저핑계로 분주히 사느라 영어도 한국말도 아닌 어리버리한 언어로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어느날 그녀를 우연히 마켓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멋진 간호사가 되어 양육권을 찾아 아이들도 데려오고 밝고 환한 얼굴로 멋지게 주류사회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 비추어 보면 "그녀가 코로나를 이겼다"라는 생각이 들어 같이 공부를 시작해 나는 여태 제자리인데 괜한 열등감에 책도 이것저것 꺼내 읽고 악기도 열심을 내본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공포와 경제적 불안감, 갖혀진 시간에서 코로나가 끝나면 우린 어떻게 변해 있을까.

감옥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보게 되면서 성경을 읽고 선교사가 된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변호사가 되었다고도 한다. 공포와 외로움 속에서도 창조가 꿈틀대며 새롭게 태동하는 걸작이 나오기도 한다. 종일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가족들에게 나는 말한다.

"세계가 우왕좌왕한 이 위기 상황에 대한민국이 잘 대처해가며 세계의 본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똑같이 주어진 멈춰버린 시간에 죽음의 공포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고 부족한 것 이 기회에 채우기 바란다."고 부탁했더니만 다같이 이구동성으로 "엄마가 할 일이 제일 많겠네요" 한다.

수잔 김
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