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시간은 지나간다

하고있는 일이 없어도 시간은 지나가고 새로운 달도 시작한다. 그냥 저냥 살고 있지만, 사실은 알지 못하는 사이 너무도 변해버린 세상에 대한 걱정과 또 무엇인가는 해야 한다는 조바심의 양다리를 걸친 채 허둥거리고 있다.

아주 오래전 디즈니랜드에 놀러 갔다 기다리는 줄이 유난히 짧은, 우주의 그림이 그려진 놀이기구를 무심코 신나하며 탄 적이 있다. 롤러코스터와 비슷한 기구였고 우주여행을 경험하는 것이라 단단하게 안전벨트를 매도록 한 후 천천히 조금씩 굴 안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며, 그 안의 모두가 환호했다. 천장 위 얇은 빛의 별도 달도 다 사라지고 갑작스레 깜깜해진 어두움 속에서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바람이 내는 차가운 소리도 들렸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도무지 어디로 움직이며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또 그 움직임에 미리 준비하는 작은 몸짓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두려웠고,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더 심한 공포와 무조건 여기서 나가야만 한다는 생각만으로 울며 소리 지르다, 결국 온통 눈물 범벅으로 마지막 환한 세상 밖으로 나온 후 안도하고 또 크게 웃으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때 생각이 자꾸 나는지 우습지만, 바로 요즘이 무엇인지 대상을 모르는 채 느끼는 두려움과 어떠하든 환한 곳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다.

삶의 과장되고 부풀어진 어깨의 넓이가 좁아져 낯설지만, 오히려 예전과 달리 작고 소소한 일에 기쁨과 행복을 찾고 알게 된다. 그냥 밑동만 잘라 심어둔 파들이 물만 주는데도 아주 파랗게 올라오는 걸 보며 신기해하고, 보고 싶은 친구와의 긴 전화 통화가 마냥 즐겁고, 끝내지 않은 채 오랫동안 구석자리에 있던 그림들을 마무리한 후 뿌듯해한다. 그리고 늘 곁에 언제라도 있을 거라 무심했던 가족들의 단단한 묶음과 결국 지금 이 자리가 인생의 마지막 아늑함이라는 걸 다시금 배운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은 지나간다. 비록 지금은 세상의 파도 속에서 하나의 섬처럼 떠 있는 우리들이지만 - 다시 또 서로에게 함께 가자고 다독거리고 보듬고서, 더없이 환한 공존의 세상이 새롭게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리며, 길어진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