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잠길에서

하나가 좋지 않으면 또 다른 하나는 그와 다르게 좋아지는 것도 있나보다. 눈이 많이 나빠 잘 보이지 않아서인지 상상력은 더 다양해지고 어릴 적 행복한 꿈도 많이 꾼다. 이유 모르게 망막이 오랫동안 온통 찢어져 있어 시력은 망가져 있었고 백내장도 심하여 한동안 치료를 받고 수술까지 하였다. 수술 후 돌아와 내 집 내 침대에 누웠는데 천천히 잠이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예전의 한여름 낮 - 뜨거운 아스팔트가 녹으며 아른거리듯, 나도 잠길에서 아른거린다. 문득 멀리서 뭔가를 사라고 외치는 소리와 개구쟁이 남동생들이 서로 장난치는 소리도 들린다. 칙칙폭폭 하며 달리는 기차와 먼 곳으로 이사간 작은 옥희도 보이고 늘 분주한 옥현이와 함께 웃고 있는 아주 어린 내 모습도 보인다. 지금 나지막한 바람에 흔들리는 얇은 풍경 소리와 옛날 나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같이 어우러진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꿈 안에 잠겨있다 깨어나니, 해가 떠 있는 저녁 시간이 마치 늦은 아침인가 싶어 서둘러 책가방 챙겨 얼른 학교에 가야 할 것 같아 두리번거린다. 잊고있던 예전의 기억들이 아지랑이처럼 떠오르며 가슴 속 깊은 따뜻함과 그리움도 있지만, 또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한 후회도 많다. 어려서는 늘 강해야 하며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하고, 화가 나도 슬퍼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강박감 같은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조금씩 나빠지고 고장이 나며 어딘가는 아프지만, 강하지 않아도 괜찮고 더는 착한 척하지 않아도 되며 슬프면 슬프다고 엉엉 울어도 되는 지금의 오늘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짜 나 자신이며 행복하다. 때론 젊고 파랗고 싱싱한 것을 잃어가는 아쉬움과 쓸쓸함과 미련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기대와 칭찬 없이도 충분히 괜찮으며, 그런 모자란 속에서 되려 안도한다. 좋지 않은 것들은 또 다른 의미의 좋은 것으로 되돌아오는 순환과 이치를 보며, 품고 있는 마지막 자만을 푼다. 이렇게 삶은 새로움으로 대신하여 잃어가는 자리를 메꾸며 채울 것이고, 포기할 줄 알고 부족한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응으로, 어느덧 깊어지고 그윽해지며 더 따뜻해질 것이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