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기쁨의 신앙

요즘 같은 시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기뻐하라!"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항상 기뻐할수 있을까요? 구글 번역기에서 "기쁨"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영어로 "Pleasure"라고 나왔습니다. 저는 잘못 찾은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타이핑을 해봐도, "기쁨"이란 단어는 여전히 "Pleasure"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깨달았습니다. "아~! 그래 맞다! 이게 바로 기쁨에 대한 세상적인 관점이구나!"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쁨은 육체적 쾌락입니다. 외부적이 여건에 따라 주어지는 쾌감을 말하는 겁니다. 세상은 이 Pleasure를 추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온갖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기쁨은 파괴적인 기쁨입니다. 거짓된 기쁨입니다. 결국 인생을 멸망하게 만드는 기쁨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적 기쁨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기쁨은 영어로 Joy라 그럽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영어로는 이렇게 쓰여 있어요. “Rejoice in the Lord always! I will say again: Rejoice!” 여기 Rejoice는 기쁨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역사하는 상태, 기쁨이 흘러 넘쳐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우리를 살리는 기쁨입니다.

그런 기쁨이 어디에 있다 그럽니까? 사도바울은 "주 안에서"라 그랬습니다. 주님 밖에는 이런 기쁨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주님 안에서라는 말은 믿음 안에서 라는 말입니다.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삶이지요. 그러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좀 가난한들 무슨 상관입니까? 이 세상에서 조금 출세를 못한다 한들 무슨 상관 입니까? 이 세상에서 좀 고난을 당한다 한들 무슨 상관 입니까? 성도는 주님 안에서 천국의 모든 영생 복락을 유업으로 받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이 고백하지요.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 세상의 그 어느것도 바울의 마음 속에 있는 기쁨을 빼앗아 갈 수는 없었던 겁니다.

하나님은 기쁨이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오죽하면 성령의 열매중에 “기쁨”이 들어있겠습니까?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성령의 열매가 나오지요.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갈 5:22,23. 새번역). 이것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입니다. 여기 보시면 "사랑" 바로 다음에 나오는게 "기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사실을 잘 알아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은 기쁨이시다!" 라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기쁨이십니다.

천국이 왜 기쁨이 충만한 곳인지 아십니까? 기쁨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기쁨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자녀들도 이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는 것만큼, 기뻐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보시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어디에 살게하셨다 그럽니까?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에덴"이라는 히브리 말의 뜻은 “기쁨” 입니다. 에덴동산이 기쁨의 동산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친밀한 교제를 누리며 살았기 때문이지요. 죄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때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사탄의 유혹에 빠져 죄를 지었을때. 그들은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습니까? 그후에 인간의 삶은 고통과 슬픔이 가득한 비참한 인생 되었던 겁니다. 없습니다. 참된 천국의 기쁨을 항상 누릴 수 있습니다.

최승환 담임목사
뉴네이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