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Autumn 세계 미술관 기행

미술관을 찾아가는 일은 작품의 시대를 찾아가는 여행과도 같다.
작품을 통해 작가의 영혼을 만나기도 하고 예술로 재탄생한 삶의 풍경도 만나며 미술관이 존재하는 도시의 빛나는 역사속으로 여행하기도 한다.

사색하는 가을, 예술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세계의 미술관을 소개한다.

시카고 미술관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미술관으로 뽑힌 '시카고 미술관' 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과 더불어 미국의 3대 미술관 중 하나다. '시카고 미술관' 은 1866년 개관했다. 시카고의 소규모 미술가 그룹은 훌륭한 미술 교육과 전시 기회를 마련하는데에 목적을 두고 미술관을 세웠으며 이후 1879년 순수 미술 아카데미로 시작해 1882년 지금의 이름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새롭게 정비되었다. 이곳에는 미술관과 학교가 함께 운영되고 있는데 특히 미술 학교는 월트 디즈니, 제프 쿤스 등을 배출해 낸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예술 교육기관이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 학교로 꼽힌다.

'시카고 미술관'은 시카고강 남부 미시간 거리와 애덤스 거리 사이 그랜드 공원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밀레니엄 파크에서도 연결된다. 과거 미술 학교였던 건물에 파리의 퐁피듀 센터와LA의 라크마 미술관을 만든 이탈리아 건축가인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새롭게 현대적 건물을 세워 마치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 듯 보여진다.

이곳에는 회화를 비롯하여 조각, 판화, 드로잉, 사진, 장식미술, 동양미술, 원시 미술품까지 총 망라되어 있고 수천 년 된 고대의 미라까지 약 30만점에 이르는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19~20세기의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화가들의 작품과 미국 작가들의 작품이 시대와 장르별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대표 작품으로는 밀레, 모네, 르누아르, 고흐, 렘브란트, 피카소 작가들의 유명 작품들이 있으며 특히 오로지 붓으로 점을 찍는 것으로만 색상을 표현해내는 점묘법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의 대표작인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해마다 약 160만명의 관람객이 찾는 '시카고 미술관' 의 입구에는 에드워드 키미(Edward Kenmey) 의 두 마리 사자 조각이 방문객의 눈을 사로 잡는다. 이 사자의 꼬리를 만지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어 방문객들은 꼭 사자의 꼬리를 만지고 미술관에 들어간다. 미술관은 본관과 신관으로 나뉘는데 본관에는 유럽 회화가 있으며 신관에는 현대 미술과 미국 미술이 전시되어 있다. 또 동양 미술과 장식, 건축, 사진 작품 등은 본관 1층과 지하 1층에서 관람할 수 있다.

미국 작가 중에서는 그랜트 우드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그랜트 우드는 미국이 경제 대공황으로 힘들었을 때 미국 중서부 사람들의 생활상을 주로 화폭에 담았는데 때문에 그를 지역주의 화가라고 불렀다. 그의 대표작인 '아메리칸 고딕' 은 미국 근대 회화 중 가장 많이 패러디를 남긴 작품으로 유명하다.

'시카고 미술관'은 그 규모에 걸맞게 관람객들을 위한 휴식 공간도 잘 마련되어 있다. 본관과 신관을 연결하는 발코니에는 음료나 식사를 즐기며 쉴 수 있는 카페가 있으며 디자인, 건축, 미술 등 문화에 관한 책과 잡지들도 볼 수 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이 모여있는 곳 프라도 미술관
Museo del Prado

열정의 도시 스페인. 그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다. 다양한 예술이 꽃피우는 도시이며 뜨거운 파티 피에스타와 찌는듯한 더위를 피한 한낮의 망중한 시에스타로 대표되는 곳이다.

세계 최고의 축구팀 중 하나인 레알 마드리드의 연고지기 때문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경기가 있는 날마다 거리로 쏟아져 나 와 정열을 불태우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뜨거운 도시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예술에 대한 열정. 예술에 대한 열정이 모여들어서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불러모으는 프라도 미술관은 유럽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루 브르 박물관이나 대영 박물관 보다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유럽 회 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방문하는 알찬 박물관이다.

왕가의 이름으로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왕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애초에 프라도 미술관을 위한 콜렉션이 왕가에서부터 나온 것이며 태생부터 왕가의 이름 아래 발전해왔다. 16세기 당시 스페인을 지배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스페인 왕들은 미술품을 열정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신대륙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스페인이 제국으로 올라서기 시작하던 때다. 신대륙에서 나오는 많은 산물들과 이익은 왕가에 커다란 부를 가져다 줬고 이는 스페인 왕가가 원하는 미술품은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엄청난 구매력을 확보하는 원천이 되었다. 카를로스 5세나 그의 아들 펠리페 2세 같은 스페인 왕들은 유럽 미술 시장에서 수집가로 이름이 높았다. 왕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불어난 컬렉션은 어느 정도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었다. 스페인 왕가의 미술품 컬렉션의 목적은 스페인 미술의 중요성과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도 프라도 미술관의 수집품은 12세기부터 19세기의 스페인 미술이 주를 이루고 있고 스페인과 정치적으로 우호 관계를 유지했던 플랑드르와 이탈리아의 작품이 많다.

1785년 카를로스 3세가 건축가 빌라누에바를 시켜서 현재의 프라도 미술관 자리에 건물을 짓게 했다. 하지만 완성을 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미완성으로 남게 됐다. 훗날 페르난도 7세가 이 건물을 완공시키고 왕가의 미술품 컬렉션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사용하게 된다. 1819년 11월 왕립 회화 조각 미술관은 프라도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적인 개관을 한다.

세 거장

스페인의 대표적인 미술관인 프라도 미술관에는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페인 화가 세 사람의 콜렉션이 충실히 갖추어져 있다. 그레코, 고야, 벨라스케스가 그들이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교육을 받고 스페인에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별명인 엘 그레코는 이탈리아 말로 그리스인이라는 그레코에 스페인어 정관사인 엘을 붙인 이름으로 그의 국제적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별명이다. 엘 그레코의 그림을 보면 이런 복잡한 이력이 작품에 도움을 줬음을 알게 된다. 현대회화와 고전회화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듯한 독특한 화풍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개성이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엘 그레코의 ‘그리스도의 세례’, ‘부활’, ‘성모자’ 등이 전시되어 있다.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바로크를 대표하는 17세기 유럽 회화의 중심적인 인물이다. 고야, 마네, 피카소, 달리와 같은 수많은 거장들에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화가 중의 화가라고 불리고 있다. 종교, 신화, 서민의 생활, 권력자들의 초상화 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뛰어난 작품을 수 없이 남겼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바커스의 승리’, ‘시녀들’ 등의 유명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고야와 사투르누스

엘 그 레코와 벨라스케스도 분 명히 스 페인을 대 표하는 화가다. 하지만 프라도 미술관을 대표하는 화가를 단 한 명만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없이 고야를 꼽을 것이다. 고야의 초기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의 유화 작품들 무려 100점 이상이 프라도 미술관의 소유이며 소묘만 해도 수백 점에 이른다. 아름다운 여인을 담담하면서도 새로운 필치로 그려낸 알바공작 부인이나 고야 스스로의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옷을 벗은 마하 그리고 옷을 입은 마하 등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고야의 명작이다.

하지만 고야의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 는 작품 을 꼽으라면 사투르누스일 것이다. 자기 자식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비주얼을 담고 있다. 사투르누스는 고대 로마 농경의 신으로 자기 자식이 자기를 시해하고 왕좌를 뺏을 거라는 예언을 들은 뒤 자기 자식을 하나씩 잡아먹는다. 고야는 사투르누스가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장면을 섬뜩할 정도로 리얼하게 그려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시 금기시 되던 소재를 기존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화풍으로 그려내어 엄청난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이윽고 사투르누스는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사투르누스를 감상하면 왜 고야가 당시의 화가들과는 완전히 차별화 되는 정신 세계를 가졌으며 그의 시도들이 현대 회화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지 알 수 있다.

혁명과 마주하다 오르세 미술관
Musée d'Orsay

프랑스 파리는 미술의 도시다. 파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각종 미술관과 박물관을 모두 둘러보려면 한달 이상이 걸린다는 말도 과장이 아니다. 물론 이런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 중 최고는 루브르 박물관이다. 누구나 일생에 꼭 한번은 봐야 한다고 일컬어지는 루브르 박물관은 그야말로 예술의 총 본산이다. 루브르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한 다양한 예술품을 총망라해 놓은 곳 이라면 오르세 미술관은 확실한 컨셉트를 가졌기에 더욱 더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전세계의 미술사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인상파 회화를 주로 전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상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인상파 회화를 본 관람객들은 너무나도 다른 예술 형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전시된 작품을 찢으려 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정도로 혁명적인 것이 인상주의였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전세계의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아 넣었던 혁명을 마주할 수 있다.

재판소에서 미술관으로

1804년 지금의 오르세 미술관 자리에 오르세궁이라고 불리는 최고 재판소 건물이 지어졌다. 하지만 최고 재판소는 1871년에 불타 없어졌고 1900년에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오르세 역이 세워졌다. 파리국립미술학교 건축학 교수였던 빅토르 라루는 당시 최고의 기술력을 동원해 현대적으로 역사를 지었다. 현대적 전등, 엘리베이터, 지하 레일트랙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설이 들어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이용객이 적어 1939년 문을 닫았고 1979년에 현재의 미술관 형태로 실내장식과 내부가 변경되었고 1986년 오르세 미술관이란 이름을 달고 개관했다.

1979년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는 사상 유례없이 치열한 경쟁을 거쳤다. 6개의 그룹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ACT 건축가 그룹은 기존 건축물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미술관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혁명을 잉태하다

19세기 후반은 인상주의 회화들이 태동할 때다. 하지만 파리 미술계의 평가는 냉담했다. 보수적이던 파리 미술 아카데미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국립 미술관에 전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르누아르를 포함한 보관위원들이 계속해서 작품들의 전시를 주장했다. 무려 2년 동안 논란이 계속된 끝에 40여 점의 인상주의 회화가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이 전시는 엄청난 논란과 공식 항의를 일으켰지만 결국에는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인상주의 회화는 주류 미술계로 입성했다. 인상주의 회화는 루브르 미술관, 현대 미술관, 쥐드폼 미술관 등으로 옮겨 다니다가 컬렉션이 너무 방대해져서 새로운 미술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1977년에 오르세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탈바꿈 시키기로 결의하고 현대 미술관은 퐁피두 센터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인상주의 회화와 조각의 요람이 된 오르세 미술관은 그 후에도 공격적인 구매에 나서 근대미술의 총아로 군림하고 있다. 클림트, 뭉크, 몬드리안, 함메르쇠이의 작품들이 개관 이후에 구매되어서 전시중이다.

올랭피아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는 인상주의 회화 중에서도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865년 당시 최고의 미술행사라고 할 수 있는 아카데미 살롱에 출품하여 입상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관람객이나 파리 미술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으나 주류 미술계에 거의 처음으로 소개된 인상주의 회화라고 할 수 있다. 올랭피아는 타치아노의 명작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보고 마네가 그리게 된 명작이다. 올랭피아 안에서 나체로 그려진 여성은 고전주의 회화에서처럼 완벽한 몸매 비율을 가지지 않았으며 얼굴도 예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모델의 나체를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는 것이 당시의 미술계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두운 배경과 흑인 하녀의 모습과 대조되도록 밝은 여성의 나체는 그야말로 눈에 확 띄는 것이다. 마네 사후에 이 작품은 모네의 주도로 국립 박물관 중 하나이자 오르세 미술관의 모태가 되는 뤽상부르 미술관에 전시되었다. 이 작품이 준 충격은 파리 미술계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고 인상주의 회화가 주류로 편입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마네는 이 작품 이외에도 말쑥한 신사들과 나체의 여성이 피크닉을 나온 풍경을 묘사한 풀밭 위의 점심식사로 또 한번 파리 미술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Guggenheim Museum Bilbao
은색으로 빛나는 현대미술의 보고,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1997년 10월.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 빌바오에는 기괴한 건축물이 들어섰다. 보통의 건물처럼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구불거리며 번쩍 번쩍 빛이 나는 은색의 건물은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아서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언뜻 봐서는 강가에 세워진 은빛 건물의 용도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역사에 다시는 없을 충격적인 데뷔를 장식한 이 건물은 세계적인 미술관인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인‘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이었다.

완공까지 무려 7년의 세월이 걸린 이 구겐하임 미술관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질적인 건축물이었다. 미국 철강계의 거물이자 세계 최고의 미술품 수집가인 솔로몬 구겐하임이 세운 구겐하임 재단에서 건설한 분관이었지만 빌바오라는 작은 소도시라는 선택지가 의외였다. 뉴욕에 본관을 둔 구겐하임이 분관으로 선택한 도시는 베를린이나 베니스 같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주요도시였다.

관광도시가 된 빌바오

스페인의 작은 소도시 빌바오는 스페인 축구의 팬이 아니라면 모르는 이름이다. 15세기부터 철강과 조선을 토대로 발전한 도시였지만 스페인 철강업계의 쇠퇴와 함께 도시는 몰락했다. 게다가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 때문에 도시의 이미지는 심각하게 안 좋았다. 실업률은 30%까지 치솟으면서 그야말로 잊혀진 도시가 되기 직전이었다.

빌바오시는 이런 어려움을 벗어나고자 빌바오를 문화관광도시로 만들 계획을 세우게 된다. 때마침 분관을 내고자 하는 구겐하임 재단과 빌바오시의 의견이 일치했고 항상 독특한 디자인으로 이슈를 만드는 20세기 건축계의 기린아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을 맡으면서 사업은 급물살을 탔다. 당초예산의 1400%가 넘는 1억달러의 예산이 들어간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그렇게 탄생했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파급효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전시 미술품보다 미술관이 더 유명한 미술관으로 자리잡으며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거물급 미술관이 되었다. 이런 엄청난 파급력으로 인해 ‘빌바오 효과’라는 말도 생겨났다. 하나의 랜드마크 건축물이 도시 전체를 살리는 효과를 나타내는 말로 하버드 경영 대학원에서 붙여준 이름이었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파리의 루부르와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에 이어서 유럽에서 3번째로 연회원이 많은 미술관이 되었으며 개장 후 지금까지 경제효과가 3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랭크 게리가 물고기의 이미지를 연상하며 만들 었다는 이 건물은 360도 모든 각도에서 다르게 보이며 주경과 야경 또한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날씨에 따라서도 빛의 반사가 다르기 때문에 볼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구겐하임 빌바오를 상징하는 거대 거미

구겐하임 빌바오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요람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소장품의 장르는 팝아트를 비롯하여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등 현대미술이다. 이러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경향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설치미술 작가인 루이스 부르주아가 미술관 바로 앞에 설치한‘마망(MAMAN)’이다.

불어로 어머니를 뜻하는 이 마망은 거대한 거미의 형상을 하고 있다. 약 9.1미터 높이의 청동으로 만들어진 거미로 대리석 알을 품고 있다. 마망 시리즈는 일본 도쿄 롯폰기의 모리 미술관이나 한국 서울 한남동의 리움 미술관의 야외조각장에도 전시가 되는 등 전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설치미술 중 하나이다.

부르주아는 대체 왜 이 거대한 청동의 거미를 어머니에 대한 상징으로 내세운 것일까? 일단은 기본적으로 모성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하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알을 품고 있는 거대한 거미는 끝을 알 수 없는 모성에 대한 경외감과 두려움을 표현이라는 것이다.

부르주아는 이 작품을 만들면서 남성과 여성의 갈등에 대한 표현이 마 망에 나 타나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부르주아의 유년시절은 불행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지름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강하고 깊은 적개심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게 되면 가지게 될수록 어머니에 대한 연민도 같이 생겨났다. 엄청난 거미의 크기에 비해서 가늘고 약한 거미의 다리는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강아지, 그리고 시간

거대 거미 바로 옆을 보면 알록달록한 꽃과 풀로 만들어진 강아지 한 마리가 서있다. 현대 키치 예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제프 쿤스의 퍼피다. 퍼피는 최근 언론에 끝없이 노출되고 있는 Balloon Puppy를 만든 작가로 알록달록하면서도 귀여운 이른바 키치적인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상징 2개를 지나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면 영구전시관이 나온다.

영구전시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공간미술의 대가인 리처드 세라의 작품‘시간의 문제(Matter of Time)’ 리처드 세라는 평생을 공간에 대한 고민을 해온 작가로서 대부분의 작품이 공간을 철판으로 나누는 식이다.

시간의 문제는 리처드 세라의 대표작 중 하나로 기묘한 모습으로 휜 철판 사이의 공간에 들어가서 걸어 다닐 수 있다. 미로 같은 느낌을 주는 시간의 문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독특한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_ 클로이 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