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또 다른 어머니날이 오면

가끔, 사람들이 북적이는 오래된 시장 안 온갖 좌판들이 즐비한 곳에서 한가득 김밥 떡볶이 등등 주문해 놓고선, 마냥 우두커니 앉아있는 꿈을 꾼다. 깨고 나면 참 많이 서운하다. 배 고픔이 아니라 마음이 고파서 그런가 싶다. 5월의 어머니날이 또 가까워졌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의 빈자리가 참으로 넓어 여전히 서성인다. 늘 단단하고 커다란 모습으로, 다정하고 살가운 엄마가 아니라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하며 나이가 들어야 하는지 일러주시며, 모자란 딸을 나무라셨다. 또 사랑에 빠져 있을 때도 세상은 결코 여자와 남자 둘로만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고 애써 알려 주셨다.

요즘 이상한 병 때문에 모두가 밖으로 나오지 않은 체 움직이질 않으니 어느 날은 토끼가 마당에 나타나 느긋이 놀고 있다. 회색빛의 자그마한 모습인데 별 두려움 없이 한번 흘깃 보더니, 나무 아래로 유유히 사라진다. 그렇게 누군가가 힘을 잃으니 그동안 숨어 살고 있는 다른 누군가가 나타난 것이다. 원래 채워져 있던 자리가 비면 또 다른 무언가가 그 자리를 메꾸며 그렇게 살아지는 것인가 보다.

몇 년째 어머니날이 오면 전화기를 손에 들고서는 없어져 버린 옛집의 번호를 돌린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받으면 끊어버리지만, 마음 속에 쏴한 바람이 일어난다. 제대로 일러주신 걸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혼자 마음대로 하던 지난날들이 부끄러워 더 억지 부리고 짜증 내며 과장했었는데, 이제는 그 허세가 딱 그만큼 내게로 들어와 버려 마음이 허기진 것이다. 뒷마당의 빈자리에 나타난 토끼처럼, 다른 무언가가 다시 채워지고 그것을 대신할 것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또 다른 어머니날이 오면서 배운다. 삶이라는 것이 - 풍족하고 완벽하며 전혀 불편하지 않고 사는 거보다 - 채워지지 않고 목마르고 고픈것이 있음으로 더 애쓰고 아파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엄마가 일러 주신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