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의 그림과 함께하는 수필 - 바람 자욱

바람이 불고 있는지 아니면 없는 듯 그냥 스쳐 지나가는지 몰라, 마당에 걸어둔 기다랗고 가날픈 조개껍질 풍경 소리로 알아챈다. 작고 여린 소리이지만 "나 지금 여기 지나가고 있어" 하며 살랑살랑 들려주는 소리가 참 좋다. 바람에 색이 있다면 아마 푸른색일 거라 상상해본다. 살면서, 누군가는 있는지 없는지 소리 내지 않은 채 조용히 자신의 몫을 살다 어느 날 먼 길을 떠나고, 또 어떤 이는 지나가는 자욱 하나씩 표현하며 살다 떠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차이 나는 다름도 모두 귀한, 소중한 인생일 것이다.
아침에 열어본 이메일 속 부고에 생소한 이름이 보였다. 전혀 모르는, 다만 가까운 동네의 주소라 어떤 분일까 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다름 아닌 바로 30년 넘게 알고 지낸 - 그렇지만 남편의 성으로 바뀌고 또 영어 이름으로 불린 -그녀였다. 마지막 순간에 본래의 이름으로 먼발치의 내게 이별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참으로 많은 일에 열정적이었다. 그림 그리고 도자기를 하며 고전무용을 하고 기타를 치며 다른 이들을 위한 봉사도 열심으로 . 정말 지나가는 소리 알려주며 살았었다. 가끔은 그러지 못하는 내게 재촉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마주치면 슬며시 다른 쪽으로 돌아가곤 했지만, 늘 사람들과 어울리며 활동적인 건강한 모습을 부러워했다.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그리했을 터인데, 고마운 마음과 서운함이 함께 온다. 누군가는 자신이 생각하고 알고있는 것을 표현하는 게 서툴러, 미처 말하지 못한 채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그렇게 자기 자리 지키며 무심한 듯 지나간다. 또 누군가는 무엇이라도 지나가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 숨겨진 재능을 찾아 소리 내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며 애쓴다. 무엇이든 어떠하든 모두가 시리도록 아름답다.
바람 자욱따라 들려주는 각각의 소리가 듣기 좋아 매달아 놓은 풍경 줄들이, 며칠 전 심한 바람에 헝클러진 채 뭉쳐있는 걸 하나씩 풀면서, 열정으로 살다 떠난 그녀에게 오늘 아침 안녕이라고 작별 인사를 하며, 오랜만에 올려다본 하늘이 거기에 있었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